조희금 (사)가정을건강하게하는 시민의모임 이사장

 
 

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대처하기 위한 방역을 한 단계 완화하면서,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학생들은 학교에 갈 수 있게 되고, 어르신들을 위한 경로당도 문을 열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러한 기관이나 시설들이 본래의 기능 외에 얼마나 중요한 다른 사회적 기능을 하는지, 얼마나 고마운지 무엇보다 지난날 어머니 세대가 책임졌던 든든한 가정과 전업주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게 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면접촉, 특히 말할 때 튀기는 침을 통해 전파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제일 먼저 나온 방역대책 중 하나는 학교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의 문을 닫은 것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필요에서 여러 차례 개학을 연기했고, 그 후 집에서 컴퓨터 화면을 통해 공부하는 비대면 수업으로 아예 전환했다.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은 누가 돌보아야 하는가? 경로당이나 주간보호센터에도 가실 수 없는 어르신들은 어디에 계셔야 하는가? 그들은 모두 집에 있어야 하지만, 누가 집에서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돌볼 것이며, 누가 어르신들을 챙겨드릴 것인가에 대해 국가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개별 가정이 책임질 일이다. 그저 국가는 방역을 위해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도록 하면 그만이다.

가정은 가족원을 돌보는 것이 마땅하므로, 가족원을 돌보는 부담에 대해 정부는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고 대책을 세울 필요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이러는 사이 개별 가족의 부담은 과중해져서 어려움을 토로하는 소리가 넘쳐난다. 직장 다니는 엄마는 집콕하는 아이 돌보기에 지쳐서 기운이 빠지고, 한부모가정은 더 심각하여 육아를 위해 직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몰렸다. 집에 있는 아이들은 돌봄과 보호를 받을 아동의 권리를 침해당하고 더 위험해졌으며, 요양원에 계신 노인들은 가족들의 면회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함부로 취급받고 있다.

돌아보면 산업화 시대에도 그랬다. 남편과 아버지는 새벽에 나가서 밤늦도록 일하여 아이들은 아버지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어느 휴일 집에서 아버지를 본 어린 자녀가 아버지가 낯설어 울음을 터트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집에서 가족들을 돌보고, 집안 살림을 하는 누군가가 없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경제발전이 가능했을까? 가정에서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돌보며 남편 등 다른 가족이 집 밖에서 걱정없이 산업역군으로 일할 수 있도록 온갖 가사를 전담하며 탄생한 것이 전업주부이다.

그러나 전업주부로서 여성의 역할과 노동은 사회적으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생산 활동에 참여하여 직접 소득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의 대명사로 폄하되고, 가정 내 양성평등이나 여성의 사회진출에 걸림돌이 되어, 가치를 평가받지 못한 가사노동을 누구나 기피하게 되었다.

산업화 시대의 과부하를 견뎌내면서 가정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부부중심의 핵가족이 되었으며, 조부모는 가족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적게 낳아 출산율은 세계 최하 수준이며, 외식이 일상이 되었다. 가족이 집에서 함께 식사하는 비율은 유럽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코로나 시대를 겪고 나면 또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 혼인 건수와 출산 건수가 급감하고 여성들의 실직과 자살이 증가했다는 보도를 보면, 앞으로도 가족제도가 유지될 수 있을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새로운 희망의 싹도 보인다. 가족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식사 준비 등 가사노동을 함께 분담하면서 가족 간에 소통할 수 있는 기회도 늘었다.

무엇보다 아동의 지능과 정서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밥상머리 교육의 기회와 시간이 늘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러한 때 국가는 가족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현대 가족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가족정책을 강화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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